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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삶으로 스며드는 순간의 이야기
 ─ 과연 영화 한 편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탈북자의 일상을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냈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는 탈북자의 삶도, 그들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회의 시선도 분명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산일기>는 전승철이란 인물을 통해 탈북자의 일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지만, 그보다 그것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더욱 인상적인 영화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수많은 이목이 집중된 지금 이 순간, 과연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위치시킬 수 있을까?
2011년 06월 12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박정범 감독과의 대화, 그 짧은 기록에서 힌트를 구해보자.
 
 
Q. 숙영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별히 기독교라는 종교를 비판하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종교적 가치와 의미는 그대로인데, 결국 사람들의 문제인거죠. 오히려 숙영은 영화 속 인물들 중 가장 진실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실제 그대로 믿고 행동하는 건데,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거죠. 하지만 그 모습이 실제 우리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Q. 마지막 장면에서 개의 죽음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 전에 경철이 개를 내다버렸을 때 죽을 줄 알았는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온 사이에 죽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인데요. 개는 승철에게 있어 순수함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개는 승철 자신이 가장 순수하게 사랑을 베풀고 함께 하는 존재에요. 그런데 계속되는 압박 속에서 승철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고, 결국 분노하며 변화하기로 마음 먹는데, 그 순간 윤리적인 승철도, 개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영화에서 유리를 밟는 것 같은 소음이 많이 나왔는데, 의도적인 것인지?

그 소리를 편집과정에서 일부러 넣은 것은 아니고, 실제 현장음입니다. 물론 의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연기를 할 때 그런 조각들이 많은 곳을 일부러 밟고 다녔어요. 마치 고행을 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실제 새터민(탈북자)들도 이 영화를 봤는지, 봤다면 반응은 어땠는지?

보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실제 어려운 현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게 생각하셨는데, 어떤 분들은 불편해 하셨어요. 애써 잊고 지냈던 기억을 왜 다시 떠오르게 만드냐고. 또 승철이 북한에서 살인한 사실을 고해성사하는 장면을 보고, 탈북자를 모두 살인자로 여기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셨는데, 그 분들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Q. 탈북자들이 정착금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들었다.

정착금으로 사천만원이 나와요. 그런데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해요. 그 돈을 제일 길게 가지고 계셨던 분이 6개월 정도였어요. 게다가 지금은 그 정착금마저 없습니다. 예산이 삭감되고, 이제는 매월 약간의 보조금이 나와요. 그 분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분들은 그래도 사회적응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사회적응도 쉽지 않고요. 이를 테면, 레스토랑이 어떤 곳인지 생소하기도 하지만 정작 가도 메뉴를 보고 고를 수가 없는데, 거의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셈이죠.

 


 
Q. 영화 속의 전승철은 과묵하고, 우직한 친구다. 실제 그의 모습인가?

아니에요. 승철이는 쾌활하고 밝은 친구였어요. 제가 힘들 때 오히려 승철이가 위로해주고, 많은 힘을 줬어요. 심지어 암투병 중에도 저에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걸만큼 긍정적인 친구였어요. 그런 승철이가 가끔 영화 속의 승철과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는데,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을 만났을 때 그런 표정을 지었어요.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아 영화 속에 반영이 된 거죠.


Q. 경철은 미국으로 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여기는데, 실제로 미국으로 가는 탈북자들의 삶은 나은 편인가?

제가 아는 한 분은 접시닦이로 시작해서 지금은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조금은 나은 것 같습니다. 임금도 그렇지만 그 곳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니까 다 한국사람으로 보거든요.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나 시선도 한국에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한 때는 탈북한 뒤 바로 미국으로 가서 돈을 벌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는 한국보다 미국이 좋고, 한국에 오면 정착금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는 않지요.

 
Q.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 현장에서 추가된 장면이 있는지?

추가된 장면은 없었어요. 오히려 촬영을 했다가 편집과정에서 잘라낸 장면이 있었는데, 승철이 성가대 복장을 하고 교회에서 나오는데, 복도에서 경철과 탈북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죠. 이전과 상황이 바뀌어 경철이 승철에게 도대체 왜 이러느냐 묻는데, 승철은 자신이 아는 게 없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죠. 탈북자 친구들은 괜히 시간을 끌었다며 경철을 끌고 사라지는데, 그 장면을 뺐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감정을 끌어내려는 장면으로 느껴졌고, 일종의 사족처럼 여겨졌거든요.
 
 
Q.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주로 사회적인 주제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선으로 작품을 만드실 건지?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되는 사건을 접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그것을 주제로 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요.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왜 저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고민하다보면 이야기가 떠오르는 편이에요. 항상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해보고, 고민하는 것은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배운 점인데, 그런 점에서 늘 감독님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 리D _ dj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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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동 | 대전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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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은 밀어내도 어김없이 되돌아온다.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기 전까지는. 허나 깊은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혜화,동>은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알고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이 상처를 온전히 내버려둔 채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애써 상처를 봉합하려 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혼재된 시선과 불안한 해후 속에서 우리를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지난 3월 20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이루어진 <혜화,동>의 민용근 감독의 대화가 조금은 의문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Q . 제목이 <혜화, 동>이잖아요. '겨울 동(冬)' 자라고 생각되는데, 제목을 그렇게 지으신 이유가? 두 번째는, 마지막에 혜화가 한수한테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말해서 그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됐어요. 그래서 혜화가 차를 몰고 떠나고. 그런데 떠나다가 한수를 보고 다시 후진을 하잖아요. 후진하는 장면을 굳이 넣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그렇게 되면 혜화는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했는데, 자신이 했던 말과 일관성이 없는 것 같아서요.

  
 모든 GV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인데요. 처음 시나리오 쓰고 나서 제목을 지을 때, '쉼표 동' 하고 옆에 한자로 '아이 동(童)' 자를 썼어요. 아이가 중요한 모티프여서. 혜화의 아이, 혜화와 아이, 이런 느낌으로. 그리고 혜화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떤 느낌들. 동네랑 동음이의어기도 하잖아요. 뜻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 느낌이 주는 뉘앙스들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혜화 쉼표 동' 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아이 동' 자를 따로 써줬는데, 나중에 편집 모니터링을 하다보니까 어떤 분이 겨울 느낌이 많이 난다고 혹시 '겨울 동' 자가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싶었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또 다른 분이 모니터링을 하셨는데, 계속 혜화의 마음이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혹시 '움직일 동' 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어, 그것도 맞는 것 같다고. (웃음) 근데 그게 '아이 동' 이든, '겨울 동' 이든, '움직일 동' 이든 각각의 위치에서 중요한 의미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특별히 한자를 써주지 않고, 그냥 '혜화 쉼표 동' 이라고 하면 여러 의미로 읽힐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느 하나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렇게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느낌의 '동' 자가 있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결말의 후진장면을 다양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후진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느낌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혜화가 한수에게 돌아간다, 한수 쪽으로 간다고 해서 어떤 부분들을 쉽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게 아니라 거슬러 가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는 혜화와 한수의 관계에 있어서 계속 아이가 매개로 있잖아요. 한수는 아이를 매개로 혜화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혜화도 마찬가지고. 마지막에 아이의 존재가 밝혀지고 나서 남는 것은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인데, 혜화라는 사람이 그런 한수를 그냥 버려두고 갈 것 같지는 않았어요.

 물론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저는 어떤 의문의 여지도 없이 '전진'을 썼거든요. 뒤에 다시 한 번 바뀌게 됐던 건데, 가장 큰 이유가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느낌도 있었어요. 그리고 혜화가 한수에게 가는 느낌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가 밝혀지고 나서 서로가 서로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어떤 첫 시작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장면도 둘이 같이 있는 장면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수에게 가고 있는 불안한 눈빛의 혜화의 얼굴로 끝냈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그래서 아마 혜화의 입장에서는 인정하기 싫다고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라는 말로 어떻게 보면 그 과거와의 관계는 종지부를 맺은 것 같아요. 그럼 그 이후에 어떤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후진'으로 바뀌었어요.
 
 
Q . 의외로 되돌림이라는 상징성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방식으로 되돌림이란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주신다면?

 과거의 이야기들이 사실 좀 많이 나오죠. 편집된 부분이기는 한데 수의사가 속한 밴드의 에피소드가 있어요. 편집과정에서 삭제됐지만 여기 나오는 밴드의 멤버들이 15년 전에 같은 수의학과에 다니던 친구들인데, 밴드를 15년 만에 재결성하게 되는 사연이거든요. 그런 것 말고도 과거의 기억들을 자꾸 불러오는 느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한수 혹은 혜화의 상처와 관계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 과거의 기억들을 불러온다는 게 과거의 어떤 상처들을 불러오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현재에서 어떻게 극복이 되고, 묻히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어 가는지…. 그런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중심을 이루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 같아요.
 
 
Q. 영화에 대해 사전지식 없이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제목만 보고 대학로 혜화동만 생각하며 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보면 어떤 주제, 혹은 상업영화 같은 경우는 이 영화를 한,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저희 영화 같은 경우, 배우들도 개봉할 무렵 인터뷰 하잖아요. 어떤 영화인지,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중심이 되는 이야기나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한, 두 마디로 요약하기 힘들데요. 왜 그런지 저도 알 거 같거든요.

 영화 자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거나 이런 느낌이 아니라 약간 다른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혜화라는 한 여자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버려지는 것에 관한, 혹은 보살피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 거고, 그리고 유기견과 관련된 어떤 생명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 거고, 혹은 상처라는 것들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혜화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이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서 조금씩 느껴지는 영화인 것 같거든요.
 
 물론 저도 연출노트를 작성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는 제가 가장 포괄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을 써놓기는 했어요. 작지만 소중한 인연들 앞에서 나약해지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그런 말을 제가 어떤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지 연출노트에 써놓았는데 그걸로 꼭 규정짓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보시는 분에 따라서 혜화라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 사람이 느끼는 슬픈 감정이 느껴지면 그게 이 영화인 것 같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게 되는지 그런 것에 집중을 하게 되면 그것에 관한 영화인 것 같고, 어떤 주제로서 함축을 하기보다는 혜화라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느껴지는 다양한 느낌들이 사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유다인 씨랑 처음 만났을 때 물어봤거든요. 왜 혜화 역할을 하고 싶은지. 그 친구가 영화의 혜화처럼 말이 좀 없어요. 그런데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혜화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요, 라고 짧게 대답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통해서 보시는 분들이 혜화의 어떤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 같아요.
 
 
Q . 영화의 배경이 주인공의 삶과 일치되는 듯한 철거 직전의 동네인데, 빛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그리고 자신의 손톱을 잘라서 모으는 혜화의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손톱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철거촌 같은 경우는, 이 영화의 처음 모티프가 됐던 게 유기견을 구조하는 어느 여자 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가 만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기견이 들어오게 됐고, 또 그런 유기견이 제일 많이 발견되거나 버려지는 곳이 철거촌이에요. 특히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 옛날 공간들이 계속 사라지잖아요. 뭔가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거나 실용적이지 않으면 금방 없애는 것 같아요.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 같은 느낌이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아서, 그런 게 약간 영화 속에 반영이 된 것 같고요. 촬영할 때도 그런 부분들을 좀 염두에 뒀던 것 같아요. 배경들이 워낙 황폐하고, 유기견들의 이미지도 그렇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느낌이긴 하지만 그게 너무 삭막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혜화가 하고 다니는 목도리 색깔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철거촌의 분위기랑 상반되는 따뜻한 느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배우를 캐스팅 할 때도 그런 점들이 고려가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촬영할 때도 그런 빛들이 겨울이라서 되게 차가울 수 있거든요. 그 안의 빛들이 조금 따뜻한 느낌이 났으면 했어요. 그리고 특히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에 혜화가 후진을 할 때 차 속으로 들어오는 빛은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혜화가 겪어왔던 과거의 일들이나 아니면 한수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겨울의 차갑고 가혹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조금씩 오게 되는 그런 따뜻한 느낌들이 배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빛들도 좀 따뜻한, 어떤 노란색의 빛, 해질녘의 따뜻한 느낌의 빛으로 촬영을 했고, 조명이나 마지막에 색보정도 그렇게 했고요. 그래서 촬영에 전체적인 컨셉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런 것들이 방금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황폐함 속에 보이는 따뜻함 같은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했어요.
 
 두 번째 질문해주신 손톱 같은 경우는, 혜화가 18살에 큰일을 겪게 되잖아요. 큰일을 겪고, 영화 속에서 5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건데요.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자기 스스로 이 시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모르고, 혼자만 알 수 있는 다짐. 특히 손톱이라는 것은 한수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 일부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 때문에 혜화가 모으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고, 특히 혜화가 견뎌오는 시간이라는 게, 시간이 무형의 것이잖아요.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그런데 그 손톱이 모아져 있다는 것은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물질화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한수가 손톱을 발견하게 됐을 때도 혜화가 지나왔던, 견뎌왔던 시간들을 한수가 느끼길 원했었고, 그런 의미로 영화 속에 사용이 됐어요.
 

  
 
Q. 과거로 회귀할 때는 그냥 컷 편집이었는데, 아이에 대한 감정씬에서는 페이드인아웃으로 되어 있는데 왜 그런 식으로 편집하셨는지요?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올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냥 툭툭 넘어가거든요. 그냥 클로즈업에서 클로즈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갈 때 미리 현재의 소리가 깊게 선행된다거나 그랬던 것들은 사실은 혜화가 느낄 때 한수가 나타남으로써 계속 과거가 개입이 되잖아요. 그런 느낌들이 과거가 분리된 느낌이 아니라 현재에 문득 나타나서 영향을 끼치는 그런 느낌들. 뭔가 과거랑 현재에서의 그런 모습이 과거에 어떤 일들과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툭툭 넘어가는 방식으로 편집을 했던 거고요.

 그리고 뒤에 아이가 나오는 부분은 과거이기는 하지만 다른 뉘앙스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앞부분의 과거와 현재는 어쨌건 현재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어떤 들쑥날쑥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거와 현재의 반복이기 때문에 구별점 없이 툭툭 넘어갔던 것에 비해서 아이에 대한 부분은 사실 그렇게 과거에 플래시백이 나오는 약간 고전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현재와 딱 구분점을 두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들. 그리고 특히 그 부분들이 아기 손이 나오고, 입양도장 찍고, 그것들과 현재 혜화가 걸어가는 느낌들이 교차가 되잖아요. 그 시퀀스가 좀 독립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게 그 느낌이 경찰서 얘기를 들을 때 혜화와 철거촌에 가서 한수와 맞닥뜨리게 될 때의 혜화와 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어떤 다리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혜화,동>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나름의 성공을 예상하셨는지? 성공을 한 지금 혹시 부담감이나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은 없으신지, 차후 계획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만 명이 넘었거든요. 사실 독립영화에서 만 명이 넘는다는 게, 약간 상징적인 느낌이 있어요. 상업영화에 비하면 백 분의 일도 안 되서 사실 숫자가 주는 느낌보다 저희 영화를 통해 독립영화 쪽에 좀 더 좋은 영화들이 있다는 게 알려질 수 있다는 부분이 더 좋은 것 같고요.
 
 또 개인적으로 다인 씨가 말한 것처럼 한 분, 한 분한테 좀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이런 관객과의 대화도 있고, 서울에서도 다양하게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하고 있어요. 그 때마다 아쉬운 부분이나 좋았던 부분을 얘기해주시는 관객분도 있는데, 어떤 얘기든 애정을 가지고 말씀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단순히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로서 접근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의 개인적인 부분을 연관 지어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반응들을 들을 때 더 기쁘고요. 부담감 갖은 건 뭐, 아주 잘된 것도 아니고 (웃음) 사실 없어요.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게 좋고, 다들 힘들게 고생을 했는데 이제 좀 보람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 정도고요.

 그리고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스탭 분들에게 임금이 지급되지만, 사실 일하신 노동력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거든요. PD님과 다음 영화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민폐를 끼치지 말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영화를 하자고 얘기해요. 다음 영화를 또 적은 예산으로 찍으면 스탭 분들에게도 민폐라서 그렇게 찍지 말자는 생각이 하나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찍고 싶긴 해요. 힘이 느껴지는 영화 같은.
 
 
Q. 한수를 보면 시선이 계속 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한수가 알고 보면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데 한수를 통해 어떤 것을 나타내고 싶으셨는지요?

 한수가 사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유연석 씨가 연기를 할 때도 본인은 한수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되고, 그 상태에서 연기를 하지만 그게 혜화처럼 공통된 반응이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라서 연기할 때도 수위를 조절하는데 힘들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편집할 때 어떤 테이크를 붙이느냐에 따라서 한수가 많은 폭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 미스터리하게 등장했다가 알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어버리게 되는데 그 이유를 돌이켜보면 한편으로는 또 측은함이 들기도 하고. 편집할 때 그런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조금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의 형태를 만들게 되긴 했지만, 연기할 때나 편집할 때, 사운드작업 때 한수 부분에 음악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많은 편차가 생겨서, 그 부분을 잘 표현하는데 신경을 썼어요.
 
 
Q. 한수가 다리를 다쳐서 계속 다리를 절면서 다니는데요. 그거랑 피아노를 치는데, 그런 캐릭터로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하고요. 그리고 개가 많이 나오잖아요. 촬영하는 게 힘들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촬영을 하셨는지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한수가 다리를 저는 건 영화상에서 설명되기로는 군대에서의 부상 때문이죠. 사실 굳이 다리를 안 절어도 되기는 한데, 현재 한수의 모습이 약간 마음이 절룩이는 것 같은 느낌의 사람 같았어요. 뭔가 불안정한 상태. 그래서 다리를 저는 설정을 넣었어요. 또 비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을 한 번 겪어서 오히려 더 혜화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피아노는 일반 인문계 학생은 아니었으면 했어요. 뭔가 남들과 다른 꿈이 있는, 그런데 그게 확 꺽이게 됐을 때, 그 상황에서 오는 편차가 주는 느낌이 있으면 했어요. 또 피아노 치는 남자라는 게 유약하면서 좀 흔들리는 느낌이고, 가늘고 긴 손가락의 이미지 같은 부분이 캐릭터랑 잘 맞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개에 관련해서는 영화 찍기 전에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일단 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도록 경찰견학교 소장님을 섭외했어요. 개들도 다양한 곳에서 왔는데, 훈련 받은 개는 의외로 탈장견 한 마리였어요. 그 개 혼자만 사람의 말을 듣고, 나머지 개들은 진짜 다 각각에서 왔어요. 처음에 참치캔 먹는 개 같은 경우는 촬영감독님이 키우시는 개. 제가 그 개를 잘 알아요. 촬영감독님이 마당에서 방임으로 키우시거든요. 그래서 몇 달 좀 털 깎지 말고 흙바닥에 그냥 그대로 굴려달라고. 그래서 평소 그 모습 그대로 나와서 출현을 한거고, 먹성이 좀 있어가지고 그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이 된 부분들도 있고, 혜화가 집에서 키우는 개들 경우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들은 실제 촬영장소였던 그 집의 마당에서 키우는 개들이었어요. 그리고 집 안에서 키우는 개들은 유기견 센터에서 데리고 왔어요. 얘네들이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를 당하거든요. 거기서 캐스팅 된 개들은 촬영장에 왔고, 불행히도 나머지 개들은 안락사를 당했을 거에요. 그런데 저희가 촬영하고 다시 보내게 되면 또다시 안락사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탭들이 다 입양을 해줬어요. 그 개들을 다. 그리고 장애견이 두 마리 나오거든요. 눈 다치고, 다리 저는. 그 개들은 저희가 임순례 감독님이랑 좀 연이 있어서 감독님이 대표로 계시는 동물보호단체가 있어요. '카라'라고. 거기서 장애견을 키우시는 분이 이틀 동안 데리고 와서 연기도 시키고, 관리도 해주시고 그랬어요. 그런 연들이 다 돼서 나중에 저희 수익금들이 다 그 쪽으로 기부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고.

 특히 제일 힘들었던 건 개 장면도 힘들었지만 강아지였어요. 혜화한테 와서 혜화가 자해하려고 할 때 뭔가 위로해 주는 느낌들. 그거 찍기 전에 사실 대책이 없었어요. 강아지니까 훈련을 시킬 수도 없고, 강아지는 이리 오라고 한들 여길 보지도 않거든요.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요. 그래서 거의 그 안에 숨겨놓고 있다가 카메라를 돌리고 사람들이 춤추고 박수치고 이래도 강아지가 안 나와요. 나오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고. 그래서 거의 다큐멘터리 찍듯이 찍었어요. 동물 다큐 찍듯이. 계속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어느 테이크에서 나오더니 저희가 원하는 위치에 딱 서서 몸을 부르르 떨고 이러는 거에요. 거의 그런 식으로 운에 맡겼던 것 같아요. 동선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계속 부르기만 하고 반복해서 찍다가 딱 걸리는 거죠.
 
 
Q. 감독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이 되셨는지요?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했던 것 같은데, 몇 가지 계기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2 때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그때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이란 프로그램에서 <카페 누아르>를 만드신 정성일 평론가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이야기를 들려줘요. 듣는 영화들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른 영화가 존재하는구나. 이런 것을 조금식 느끼게 됐고, 직접 보질 못하니까 들으면서 영화에 대한 환상이 커진 거예요.

 그때 정성일 평론가께서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영화감독이란 어떤 직업인지에 대해서 말한 걸 인용했는데, 영화감독의 본질은 레드카펫을 밟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해서 영화에 대해 고상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진흙탕을 걷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결국 연극영화가를 오게 됐고, 대학교 내내 영화를 찍었는데 졸업할 때는 영화를 하진 않았어요. 그 때는 TV 다큐멘터리가 너무 하고 싶어서, 한 4년 정도 방송 다큐멘터리를 했어요. 그 이후 군대 다녀온 시간까지 치면 한 8년 정도를 영화하고 좀 떨어져 있다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그만 두게 되면서 다시 영화로 오게 된 거죠. 그런데 제 동기들이나 친구들 보면 스무살 때는 다 꿈이 영화감독, 연극하는 친구들은 배우가 꿈이었는데 연출하는 친구는 저 혼자에요. 그리고 배우를 하는 친구도 한 명이고요. 거의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새삼 새롭게 생각나요.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얘기했던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혜화동 찍으면서 사실 처음으로 그런 기쁨을 느꼈는데, 지난 겨울 엄청 추웠잖아요. 그런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촬영장 근처에 있는 밥집으로 갈 때가 너무 좋은 거예요. 아침밥 먹고 스탭들하고 촬영준비해서 찍고, 이런 일상들이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영화를 계속하는 동력인 것 같기도 해요.
  
 
기 록wonderorzr, 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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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791에 걸려있는 그림을 많은 손님들께서 좋아해 주시고, 사진으로 담아가시기도 하시는데, 이 그림들은 임진아 작가님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호수돈여고의 갤러리에서 임진아 작가님의 다른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가 1월 15일까지로, 뒤늦게 알게 되긴 했지만요.

아래의 사진은 호수돈여고 갤러리에서 보고 온 임진아 작가님의 다른 그림들입니다. 시간되시는 분들은 서둘러 한번 가보셔도!!



임진아 작가님의 그림 외에도 다른 분들의 작품도 전시 진행중입니다. 아래는 전시 공간 스케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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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은행선화동 | 호수돈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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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30일 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5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했다. 2007년 7월 1일은 기간제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시행되는 첫날이었다. 이 법안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무자비한 계약해지와 비인간적인 차별에 대한 그녀들의 분노. 하지만 예정된 1박 2일의 매장점거는 510일간의 긴 파업으로 이어졌다.
 <외박>은 2007년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홈에버 노조 파업 투쟁의 기록이다. TV 뉴스가 보여주지 않는 순간을 주의 깊게 포착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무려 510일이나 지속된 지난했던 투쟁의 과정을 담고 있다.


김미례감독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2001), <동행>(2002) 등의 작품을 연출한 후,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3년 간 투쟁한 레미콘 운수노동자들의 이야기인 <노동자다 아니다>(2003)로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7회 라이프찌히 국제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제18회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노가다>(2005), 2005년 3차례 총파업으로 자신의 노동자성을 자각하고 성장해 나가며, 과적악법을 바꿔낸 덤프 운수노동자들의 투쟁에 동행한 <차라리 죽여라 - 전국덤프노동자 총파업 2005~2006>(2006), 2007년 홈에버 노조 파업과 여성노동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외박>(2009)을 연출하였다.
 
11월 20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외박>의 김미례 감독과의 GV가 있습니다.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작품 상영 후 김미례 감독과의 GV, 다음은 감독님과의 일문일답입니다.
  
 
Q. 파업의 소식을 듣고, 바로 현장에 참여하신 건가요?
 
아니요, 우연이었어요. 제가 전에 파업 등의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여성 노동과 관련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획 중에 있었어요. 취재를 하던 중, 5월 경에 홈에버와 뉴코아에서 총파업 찬반투표를 하더라고요. 당시 50~60대 되신 여성분들을 인터뷰하고 싶었고,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같이 따라 들어간 거에요. 그런데 일이 커진 거죠. 거기에 있는 그 누구도 일이 커질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1박 2일, 잠깐 들어가서 점거하고 나오는 걸로 예상을 했는데, 길어진 거죠.
단순한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이슈로 확대됐어요. 이 일로 진보진영이 붙고, 기업도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고, 그런 다양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이슈화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들어갔는데 일이 커진 거죠.
 
Q. 뉴스를 통해 파업 현장의 노동자와 전경과 같은 공권력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공포스럽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 파업 현장에 계신 분들의 상황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혹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렇게 편집을 하신건가요?
 
그렇죠. 뉴스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그려지죠. 그런데 실제 현장의 상황은 재미있었어요.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에서는 나름대로 즐거웠는데, 험악한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이 그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놀이의 형식으로 파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볼 수 없고, 항상 대상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쌍하게 투쟁을 하고 있다거나 노동자들의 파업은 폭력적이라고 그리죠. 이런 것들은 그 쪽에서 원하는 그림들이고, 제가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실제로 저는 그들이 파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왜 저렇게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다 파업을 했을 때 그들이 왜 즐겁게, 놀이를 하듯이 놀고 있는가에 초점을 뒀어요. 이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집에서는 일하러 간다고 하고 밥을 싸가지고 와서 거기서 놀 수 있는 해방감이 있었던 거고, 그리고 일을 하던 공간에서 자기가 일을 안 하고 동료들과 놀 수 있고. 평소에는 전혀 할 수 없었던 일이죠. 일 끝나면 아이들과 남편 밥 해주러 집에 가야하고, 또 일하러 오고, 동료들과 이야기 할 시간도 거의 없었죠. 그런데 그 공간에서 동료들을 알게 되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저는 이런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 곳을 지키게 하면서 재미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역으로 그들의 그 이전의 삶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하는 질문도 던져보고 싶었던 거죠.
 
Q.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는데, 파업에 있어서도 남녀 차별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간간이 나타났지만 사실은 제가 밑에 깔고 있는 기조인 거죠. 굉장히 굵직한. 이 작품에 남성중심적인 노동운동의 방식을 비판하는 지점이 있거든요. 파업을 하더라도 파업의 중심에는 항상 남자들의 이미지만 있었어요. 사실 여성들도 똑같이 일을 하고, 그게 노동자로서의 노동으로 부각되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노동으로 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보이지만 우리는 그걸 노동으로 보지 않는 거죠. 그래서 노동운동 방식도 남성중심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운동의 방식이나 논리도 남성중심적인 면이 많았죠.
그런데 여성들이 파업을 했을 때는 달리 봐야 할 것이 있거든요. 집안의 문제부터 가족의 문제, 가족을 중심으로 항상 생각을 해오던 여성들에게 파업은 엄마로서의 일과 직장의 일 두 가지를 모두 파업하는 의미가 되는 거며, 이 경우 남성들의 지지는 어떻게 되느냐는 거죠.
남자들이 파업을 하면 여성들은 도시락도 챙겨주고, 현장에서 밥도 하고, 지지하지만 여성들이 파업을 하면 남편들이 와서 끌고 가고 싶어하죠.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집안일도 못하면서 무슨 파업이냐며 끌고 가는 건데, 그래서 이런 문제가 고려가 되어야 하는 거죠.
또 여성적인 파업 방식이 있어요. 힘으로 하지 않아요. 여성들은 힘의 대결과 군대식의 조직적인 방식이 아니라 관계와 관계들 속에서 긴밀한 감수성으로 연대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거죠.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을 해보자, 라는 식으로 진보진영에 던지는 얘기였어요.
 


Q. 개인적으로 비정규직들이 요구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 찬성을 하긴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화 해달라는 것 이외에,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을 없앨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규직화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운동권 내에서 이슈들이 늘 구체적이지 못해요.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대안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현실화 시킬 수 없는 요구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랜드 투쟁 때도 어느 한 정파에서 이번 일은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먹히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현장의 많은 여성분들이 상당히 현실적이었거든요. 상당히 영악하기도 하고요. 살아오면서 겪은 것이 많기 때문에 지혜로워요. 그래서 정규직화라는 말은 참 뻔지르르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죠. 사실상 비정규직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개체화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기업에서 준비해 온 것이고, 그걸 운동진영에서는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죠. 대안 없이 당해왔던 상황에서 투쟁이라고 하는 건데,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죠. 좀 구체적일 필요가 있어요.

가령 사회에서 여성분들은 가정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다른 일을 하길 원하는 거고, 또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시간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보다 필요한 만큼 벌어서 쓰자는 거죠. 저는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제가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도로 벌고 나머지는 놀고 싶거든요. 그게 저의 기조인데, 어쨌든 정규직화 해서 풀타임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을 무시하고 이슈를 일방적으로 만들어 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당시 많은 여성분들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했던 거죠. 그냥 끝까지 가서 죽자, 라는 방식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성 노동이라는 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아줌마라는 호칭의 문제도 있었잖아요. 나이 드신 주부 노동자 분들은 특히 애매하죠. 그 분들에 대한 호칭이 가족 내에서 불리는 것들이 많잖아요. 어머니, 아내, 누구 엄마. 하지만 이들이 사회로 나왔고, 일을 하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하죠? 노동자로서 일을 하니까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찾아야 되는 건데, 아직까지도 그들을 호명하는 적당한 말이 없는 거죠. 결혼하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여성의 경우에는 자기 직위 등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의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아줌마로 불리는 거죠. 아줌마라고 부른다는 건 아직까지 호명하는 내용 안에 그들의 포지션이 불확실함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고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현장에서 투쟁하시는 분들끼리는 서로 어떤 호칭을 썼나요?
 
거기서는 이름을 불렀어요. 언니, 동생 이렇게 불렀지만 제 경우에는 누구 씨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는 그걸 불편해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래서 뒤에 지부장님, 혹은 부녀회장님. 이런 식으로 호명을 하죠. 불편해 하시니까.
사실 호칭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많았는데, 학생들의 경우 어머님 혹은 어머니 노동자분들 이렇게 불렀어요. (웃음) 이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더니 부담된다고 하세요. 여기서도 어머니라고 불려야 되느냐며. 어머니가 갖는 묵직한 뭔가가 있잖아요. 희생해야 하고, 뭔가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그게 부담되는 거죠.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남성분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불러야 할 지 직접 물어봐요.
어려운 문제에요. 현장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친한 사람들끼리 아주머니라고 하지만,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상당한 거부감이 있어요. 보통 40~60대 분들인데, 관리자들은 보통 20~30대에요. 관리자들이 이 분들을 부를 때 아줌마라고 부르는 거죠. 무시하듯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워낙 예민해요. 나중에는 여사님을 바꿨대요. 여사님은 어떠시냐고 물었더니 아줌마보다 낫기는 한데 그것도 좀…. (웃음)
 
Q. <외박>이 일반 상업영화는 아니잖아요. 완성한 뒤 보여주고 싶은 특정 계층이 있었나요? 
 
누구한테 보여줘야 할까 했을 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어요. 이 일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취재진들이 참 많아서 몇 개가 더 나올 줄 알았어요. 몇 개 나오면 참 좋겠다 싶었죠. 왜냐하면 내가 모든 걸 담을 수 없으니까요. 결국 이거 하나만 나오게 된 것 같아서 참 아쉬워요. 아무튼 대상은 노동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었어요. 일반 대중은 아니었고요. 대중을 대상으로 하면 대중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중영화라고 하는 것이 상업적인 차원에서 지원되어야 하잖아요. 흥행을 해야 하니까 많은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거는 힘들죠. 이 영화에는 어떤 자본도 투자를 안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이야기 한대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고,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과 같이 공유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Q. 남성들은 파업을 할 때 보면 배수진을 친다는 느낌이 들어요. 반대로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남성의 경우 직장이나 일이 사회에서 굉장히 큰 정체성이잖아요. 자기의 지위와 일의 능력이 전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벌고,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힘이 생기는 거죠. 그게 남성의 자리이고, 아빠의 자리였잖아요. 직장, 일, 이런 게 바로 남성의 자리였던 거고, 여성의 자리는 가족이었던 거죠. 그래서 남자가 집에 돈을 벌어다 주지 않으면 큰 죄악인 것처럼, 여자가 어머니로서의 역할, 밥을 안 한다든가 그러면 큰 죄악이 되고, 비난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성분들이 자기 일과 직장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하면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그럼 집에서 남편은 뭐해? 남편들이 벌어다 줄텐데, 만약 결혼 안 했으면 시집가면 될 거 아니야, 라는 식이죠. 그러니까 자신의 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강도가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남성은 일터를 잃거나, 재산을 잃거나 자기 사업이 망하면 자살까지 가잖아요.
보편적으로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자꾸 분리해서 보려 하고, 여성을 가족 안으로 귀결시키려는 것은 제도화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Q. 진보진영에서는 이걸 봤는지 궁금해요. 여성 노동자가 이해가 부족한 것 같은데요.

일부에서는 보고, 일부에서는 불편해 했어요. 불편해 하면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고, 불편하니까 아예 거부하는 분도 있었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연대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었어요. 그때 당시 이랜드 투쟁을 어떤 코드로 맞췄냐면 '80만원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저임금, 생존권의 문제였어요. 그래서 80만원짜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그리고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 하는 어머니로 표현한 거죠. 그런데 그것이 결국 가져오는 문제는, 그런 식의 운동으로 여성 노동자의 문제가 바뀌겠느냐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대중에게 홍보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거죠. 여성을 가족의 문제로 귀결시키니까요.
여성이 가장인 경우도 많아요. 그걸로 먹고 살아야 되는 사람이 많은데, 여성의 노동을 항상 가족을 중심으로 접근해요. 여성이 일을 할 때, 반찬값이나 아이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부차적인 노동을 하는 것도 인식되는데 실제 현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Q. 그런데 실제 노동자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집으로 가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게 슬픈 현실인 거에요. 눈높이를 그렇게 만드는 거죠. 가족이나 어머니 이야기를 안 하고, 순수 여성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물어보라고 해요. 그들이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시라고. 대중적인 연민으로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이쪽에서 의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또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연대를 할 것인지 연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요. 실제로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논의한 적도 없고. 그냥 일방적으로 정의 내리고 끌어다 맞추려고 하니 나중에 갈등이 되는 거죠.
 
Q. 개인적인 질문인데, 대형 할인마트는 이용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안 해요. 그 전에는 항상 바뻐서 이용했었는데, 이 투쟁 이후로 대형 마트는 안 가고 구멍가게, 동네 슈퍼마켓, 길거리에서 파시는 분들. 이런 곳을 이용해요. 그냥 나 하나라도,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Q. 앞으로 생각하시는 주제나 작업은? 좀 더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 의향은 있으신지?

그럴 의향이 있어요. 주제의 경우 지금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대중과의 소통의 문제. 어떻게 만들지도 고민하고, 여성의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볼까 싶기도 해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죠.
 
 
사진ㆍ정리 D_ dj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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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무역전시관에서 18일까지 열리는 <2010세계관광음식브랜드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대전광역시관광협회와 모닝엔터컴의 공동주관인데, 실질적으로 비용 및 프로그램을 전부 담당한 쪽은 모닝엔터컴입니다. 대전을 연고로 하는 홍보/프로모션 기업 중에서는 나름 인지도 있는 업체라서 기대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존의 '세계' '관광' '음식' '브랜드' 라는 방대한 영역을 포괄하려다보니, 내용이 부실하더군요. 1회인 점도 고려해야겠지만 스태프도 그렇고 참가기업들도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갈팡질팡한 점도 거슬렸습니다.

 마음에 드는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행사장 안에서 별도의 코인을 사용하게 한 부분은 흥미로웠구요. 프리젠테이션 홀을 통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한 점이 가장 돋보였습니다. 참가업체들의 경우, 자리만 잡고 있던 업체도 있지만,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던지 적극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인 곳도 있었죠. 

 실외행사장에는 먹거리마당이 있었고, 특설무대에서는 인기가수의 음악교실(설마 이 인기가수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인기가수는 아니겠죠?)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회성 공연보다 중간중간에 작은 무대를 만들어서 자국 음악이라던지 춤 공연(해외 관광청에서 꽤 많이 참여했습니다)을 보여주었더라면 호응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첫 술에 배부르기 힘들죠. 내년에는 문제점을 잘 보완하고, 장점은 더욱 잘 살려 보다 재미있는 행사가 되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오는 18일까지 대전무역전시관에서 계속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방문해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공식홈페이지에서 참관등록하시면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으니(현장등록은 5000원)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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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에 네스트791에서 있었던, 윤성호 감독님 특강이 잘 끝났습니다.

아 그리고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6화 '두근두근 어버이연합' 업데이트되었네요.ㅎhttp://blog.naver.com/simock/10832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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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토)에 대전에서 첫 번째 TEDx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대전에서의 첫 행사라 나름 기대가 많이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준비가 잘 되었더군요.
 

예상했던 것보다 참여 열기가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현장에서 등록하는 인원도 상당수여서, 예정되어 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아직 TED라는 것에 생소한 분들도 많은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도 비교적 젊은층이 주를 이루더군요.


TED가 시작되었습니다. TEDxdaejeon의 강연은 모두 유투브를 통해 올라온다고 합니다. 아무튼 어두운데다 똑딱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TEDx를 찾아온 참여자들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참여자들에 대한 인터뷰도 이어졌는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인터뷰가 원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강연 역시 자막과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째 연사였던 'Cracker'의 편집장 장석종

KAIST 문화기술대학원 한상기 교수



스마트폰이 대세이긴 한 듯. 화면에서 제공되는 QR 코드를 '스캔'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촬영하면, 다음에 나올 연사에 대한 정보가 스마트폰에 제공된다고 하더군요. 스마트폰이 없는 저는 구경만;

DJ Shaker 'RecAndPlay'가 '기록'한 뮤직비디오를 보는 중입니다.


행사가 끝난 후, 조그만 소셜 파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조금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TEDxdaejeon는 20대 학생들의 노력으로 진행될 수 있었는데요. 행사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은데, 힘든 기색 없이 즐기는 듯한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TEDxdaejeon의 첫 번째 행사는 즐거웠습니다. 대전에서의 TEDx는 나름의 묘한 분위기가 있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거듭날지 궁금해지네요.
 
 

갈마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까해서, 도서를 검색해보면 거의 원하는 책이 없다. 그래서 희망도서 신청을 했는데, 이것또한 지금까지 신청한 책 중에 들어 온 책이 없다.

아마도 희망도서 신청에 예산문제가 있을듯한데, 예산이 없다는 예상되는 답변보다는 대전시와 대전시의회 쪽에서 도서관 아카이브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지금 수준이라면, 도서관이 있어도 책을 읽기위한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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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 갈마1동 | 갈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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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금요일 저녁에 목대윈드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티켓을 받은 게 있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후다닥 갔더랬습니다.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앞. 공연시간에 쫓겨 거의 달려가며 찍은 사진이에요. 음~ 4컷 리뷰를
써보겠다는 집념으로!!


창구에서 초대권을 입장권으로 바꾸고 또 한 장 후다닥!! 
홀에는 대부분 목대인들이나 그 친구들, 혹은 곧 대학을 가게 될 학생들이 많더군요.


공연장에서 사진 찍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시작하기 전에 눈치 보며 슬쩍 찍었더랬습니다. 
혹 눈총받을까 플래시를 안터뜨렸더니 상당히 어둡네요.. ㅠㅠ 

연주회는 목대 학생들의 연주회이기도 하고 주위에 연주자들을 응원하러 온 친구들이나
친지들임이 분명한 사람들로 약간은 입학설명회 분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관현악 연주회는 처음 보는 거라 생소하면서도 떨리기도 하고 조금 들어 본 연주곡이 
나오면 나름 즐거워하기도 하면서 관람했네요. 1시간 30분 정도 연주했는데 분주히 움직이
는 맨 뒤 연주자들과 자신의 파트를 신중히 기다리던 연주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공연이 처음이어서 잘 연주하고 있는 지, 어떤 소리들이 들리고 있는지는 세세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런 작은 소리까지 듣고 싶고 알고 싶다는 욕망은 강하게 일어서
앞으로 제가 보게 될 공연의 넓이가 한 발 더 넓어진 계기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곡 설명을 들으며 문화는 역시 역사, 종교 등 전반을 이해해야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네요. 배울게 많아요!! 
 

공연을 본 후 나오다가 야외극장에서 우리가락 우리마당 공연을 잠깐 봤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다들 흥겨워 하시더라구요. 

여름 밤 냄새를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어요 
지난 번 간 수상뮤지컬 '갑천'의 악몽은 충분히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수상뮤지컬 갑천] 에 다녀왔습니다. 8시 조금 넘어 도착하니,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그렇도 갑천에 모인들도 그렇고, 지금 이게 뭐하는 상황인지 잘 이해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큰 성이 보이는 상황.


 









수상뮤지컬 공연이 좋은지 나쁜지, 잘 보이지도 않고, 갑천 바닥은 갯벌처럼 발이 빠지고, 모여있는 인파가 너무 심해서, 각종 냄새와 더운 기운이 객석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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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 수상뮤지컬 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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